나는 파란색 우산이었다. 접히는 3단, 튼튼한 금속 뼈대, 손에 착 감기는 고무 손잡이. 첫 주인은 나를 우체국 옆 편의점에서 샀다. 갑작스러운 봄비가 내려 길모퉁이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잠깐이라도 젖지 않기 위해 날 골랐던 걸 기억한다. 그 손은 따뜻했고, 서둘러 펼쳐진 나는 비를 막아냈다. 비에 젖은 세상을 반쯤 가린 채, 나는 주인의 고요한 독백을 들었다.
그 후 몇 번 더 비오는 날을 함께했지만, 어느 날 나는 지하철 역 출구 근처에 놓여진 채 잊혔다. 아마도 급하게 전화를 받았거나, 두 손 가득 짐이 있었거나.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하루를 버텼고, 다음 날엔 다른 손이 나를 가져갔다. 이번엔 고등학생이었다. 나는 그의 책가방에 꽂혀 다녔고, 무거운 문제집 위에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하지만 내 뼈대는 어느 날 바람에 꺾였고, 버스정류장 쓰레기통 옆에 조용히 놓였다. 몸이 망가지니 나는 ‘물건’이 아닌 ‘쓰레기’가 되었다.
그렇게 며칠을 버티다, 노란 조끼를 입은 환경미화원이 나를 발견했다. 그는 나를 쓰레기봉투 대신 비닐로 둘둘 감아 손수레에 실었다. 나는 비로소 마지막 여정을 떠나는 중이다.
사람들은 날 잊지만, 나는 그들의 모습을 다 기억한다. 흐린 날의 고백, 장마철의 침묵, 이별 직후의 무거운 발걸음. 나는 그 모든 감정을 위에서 지켜봤다. 내가 비를 막았던 건, 물방울만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폐기물 더미 속에서도 나는 조용히 회고록을 쓴다. 짧았지만, 아주 촘촘했던 삶을.